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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

담배

아까부터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 손은 초조하게 라이터를 만지작거리고, 눈은 불안하게 발아래를 훑었다. 너를 기다리며 다 태워버린 담배 반 갑이 거기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지 않고서는 네 말을 들을 자신이 없는데. 가서 한 갑 더 사올까, 그 사이 네가 왔다가 그냥 가버리면 어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더딘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긴 너는 내 발밑을 흘끗 보며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담배 하나를 건넸다. 받아들려던 손이 가늘게 떨리는 바람에 그만 담배를 투욱 떨어뜨리고 말았다. 황급히 주워들어 후후 먼지를 털어내 불을 붙이는 동안 네 한숨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필터까지 다 타들어간 담배를 쉬이 놓지 못하고 있자, 보다 못한 네가 그것을 뺏어 들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아, 어─. 그러네."
나는 침착하지 못하고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너는 담배 하나를 더 내게 건네고, 또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제 그만두자."
뭘, 어째서 따위의 말은 할 수 없었다. 어지러웠다. 아까 과하게 피운 담배의 연기가 이제서야 몸속을 돌고 있는지 아득하고 메스꺼운 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은 몇 번이고 연습했는데. '그래, 그럼.'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해야지. 그리고 가볍게 웃어줘야지.
"바쁜가봐. 나 좀 많이 기다렸는데." 나는 되는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네가 듣고 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고. 나중에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
"그만해."
차분한 네 목소리가 날 막아 세웠다.
"... 나는."
네 전화가 반가웠다는 소리를 했야 했었나? 기다렸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미안하다는 말은... 아─ 이제 와서 이런 말들은 다 필요 없잖아.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넌 이렇게나 태연한데.
"그냥... 보고 싶었어. 갈게, 이제. 안녕."
너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 그게 당연해. 일어서는데 또 한 번의 현기증으로 휘청.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