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가는 길. 앞서 가던 몇몇 사람들은 걸음이 빨라 벌써 안 보인다. 이 길 다 내꺼다! 혼자 막 신나서 한적한 길 걷고 있는데, 뒤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어 돌아보니 으어..... 저기 새카맣게 뒤따라 올라오는 것은 다 사람 머리인가. 초등학생들 소풍나왔네......... 이어폰 다시 낌. 내 걸음이 느려서 애들이 하나둘 앞서가더니 어느새 나는 행렬 맨 끝으로... 중간에 다른 암자로 가는 길이 있어서, 차라리 그쪽으로 갈까 하다가 3.8km라기에 포기하고 그냥 가던 길 그대로 갔다.
사실 홍매보고 싶어갔는데, 한 그루밖에 없는줄 몰랐다. 그마저도 출사 나온 사람들이 다각도에서 자리잡고 있어서 범접할 수가 없었음. 그래서 그냥 여기저기 기웃기웃.
계단 공포증 꿈을 가끔 꾸는데, 그게 실현되는 줄 알았다. 계단 폭도 여유롭고 가파르지 않았는데 잔뜩 긴장. 발 잘못 디딜까봐 칸마다 두 발 다 올려놓고 나서야 다음 칸으로 발 옮기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본, 세월의 흐름이 물씬 느껴지던 목조건물. 화려한 단청도 좋지만, 색 하나 없이 나무결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멋있었다.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
이쪽은 한산했다. 내내 끼고 있던 이어폰도 뺐다. 조용한 게 학생들은 다 내려간 모양. 전체 다시 둘러볼까 하다가 버스 시간이 가까워 그냥 내려왔다.
날이 흐려서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허옇허옇, 사진도 우중충. 보정 못하겄다아아ㅏㅇ.
버스 안에서 본 창밖 풍경도 정말 좋았는데, 어느 길이나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그야말로 벚꽃 천지. 다음에 구례에 다시 가게 된다면, 아무 목적없이 꽃길따라 걷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