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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

그 애에게서는 물비린내가 났다

흡사 굵은 빗방울이 둔하게 텀벅텀벅 내리 막질 치는 장맛비와도 같은 냄새였다. 참을 수 없이 고약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코밑을 스멀스멀 간질이는 게 맡기에 썩 유쾌하다고도 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 애 가까이 간 일이 없었다. 여덟 살의 3월은 그 애가 아니더라도 이미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굳이 숨을 참는 수고를 들여 아쉬울 것 없는 호의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처음 접하는 작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향한 넘치는 호기심도 그 애 앞에서만큼은 한풀 수그러지는 것 같았다.
갓 국민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들뜬 열기로 어수선했던 교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3월 말경, 매일 아무렇게나 앉던 자리와 짝을 정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짝보다도, 그 애의 짝에 더 관심이 쏠렸다. 그전까지는 제일 늦게 등교한 아이, 혹은 주목받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자못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듯 으스대며 그 애 옆에 앉곤 하였다. 이제 그 옆자리가 정해지게 된 것이었다.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 애와 짝이 된 아이는 그런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고 태연한척 했지만, 얼굴은 귀까지 달아오르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불쌍하다.'라고 내뱉자, 그 관심대상은 우물우물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 애는 말없이 일어서 걸상을 끌고 멀리 떨어져 가 앉았다. 가만히 보시던 선생님이 그 애와 같이 앉을 사람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용기'있는 태도를 보였던 아이들도 선생님 눈을 피했다. 선생님은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굳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가, 어디선가 책상 하나를 구해 들고 와서는 그 애 앞에 내려놓고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나는 또 눈치 없이 그날 일을 일기장에 썼다가, 다음날 선생님 얼굴이 어제의 그 '관심대상'만큼이나 벌게지는 것을 보았다. 그날 일기에 선생님의 짤막한 소감은 없었다.
처음에는 몇몇 짓궂은 아이들이 그 애에게 도 넘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다분히 악의적인 말을 지어내 퍼뜨리기도 하였다. 차츰차츰 그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괴롭힘은 줄어들었지만, 상황이 딱히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 학급이 졸업 때까지 이어지는 그 시골학교에서 학년은 바뀌어도 사정은 같았다. 그 애의 옆자리는 늘 비어있었고, 우리는 점점 그 애를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데에 익숙해져 갔다. 드문드문 오는 전학생들도 하루 이틀 지나 눈치를 채고는, 대화 몇 마디 나눈 것을 큰 실수라도 한 듯이 반응했다. 단 한 명, 그 애를 살뜰히 챙기던 전학생이 있었다. 그 전학생은 생긴 것도 해사하고, 아는 것도 많아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항상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인지, 다른 전학생들에 비해 그 애에 대한 묘한 기류를 뒤늦게 읽었다. 전학생은 그 일로 우리를 비난하고 섞이려 하지 않았고, 우리는 전학생을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몇 달뿐으로, 그 전학생이 다시 다른 학교로 가게 되면서 그 애는 또 혼자가 되었다.
4학년이 되던 해였다. 그 해 담임은 얼굴이 유난히 붉고, 성격도 불같았다. 수업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출근 여부를 알 수 없는 날도 더러 있었다. 나는 담임의 부재가 좋았다.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날에는-어디까지나 교실에서 자리를 지켰다는 의미이다-, 매시간 그의 기분을 살피며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각도'를 처음 배우던 수학 시간이었다. 우리는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처음 만져보는 삼각자를 이용한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수리를 두들겨 맞아야 했다. 나도 삼각자 두 개를 들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105°를 만들어내지 못해 타악기라도 된 마냥 북채 세례를 받았다. 놀라고 겁에 질려 다음 문제도 족족 틀리는 바람에 몇 번이나 더 맞았는지 몰랐다. 그날은 매를 피해간 아이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나는 세 번, 나는 한 번, 이렇게 서로 적게 맞았음을 자랑했다. 수학 시간 내내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할 도리는 없었다. 그나마 이렇게 단체로 얻어맞는 일은 별로 없었다. 보통은, 수업 시간 도중 갑작스러이 지목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행을 지켜보았다. 그 애는 특히 자주 앞으로 불려 나갔다. 따귀 맞는 것은 예사였고, 머리채를 붙잡혀 칠판이며 사물함 등지에 처박히기도 했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담임 낯빛은 상기되어 있었지만, 딱히 화가 돋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태연자약한 얼굴로 그 애 머리채를 잡아 올려 흔들면서, 마치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웃음을 강구했다. 왼손잡이였던 그 애는 종종, 오른손도 못 쓰는 병신 취급을 받으며 온종일 왼손이 걸상에 묶인 채로 지내기도 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 부조리한 폭력 앞에 침묵했다. 아무도 그 애를 걱정하지 않았다. 왼손잽이 새끼, 인사도 안 하는 새끼, 맞춤법도 모르는 새끼, 손톱도 안 깎는 새끼, 실내화도 없는 새끼. 무자비한 순간을 나만 피해갈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손찌검당해 마땅한 명목들이었다. 학년이 끝날 무렵, 등교를 안 하고 버티던 그 애를, 할머니가 교무실로 끌고 가 맞아도 싼 새끼라며 담임 앞에서 흠씬 팬 사건이 있은 후에야 그동안의 일들이 공론화되었다. 쉬쉬했던 다른 교사들은 괜시리 호들갑을 떨거나,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다. 담임은 다음 해에 전근 처분을 받았다. 사유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때 늦은 귀성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가져왔어도 됐지 싶다. 낡은 버스는 심하게 흔들려 요란한 소리가 났고, 쾨쾨한 냄새는 좌석마다 깊숙이 스민 것 같아 등을 기대고 싶지가 않았다. 공기도 습기를 머금고 무겁게 내려앉아 숨이 막혔다. 창밖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리 숨 트이는 풍경은 못 되었다. 산 그림자가 져 한여름에도 서늘하게 보이던 강은 장맛비로 불어나 흙탕 진 물이 넘실거렸다. 물비린내가 밀려왔다. 20년도 더 지나,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애가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로도 간간이 소식이 들려오기는 했었다. 큰 사고를 당해 입원했다더라.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더라.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더라. 죄 나쁜 일뿐이었다. 그 애의 하나 남은 피붙이, 세 살 터울의 누이 소식만큼은 듣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6년을 외면한 것치고는 민망하게도 친절한 바람이었다. 고향을 떠나오면서는 그 애뿐 아니라 다른 동창들의 소식도 알기 힘들어졌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락이야 닿을 수 있었겠지만, 그다지 내키지가 않았다. 이 버스 안에서도, 사람이 타고 내릴 때마다 혹 아는 얼굴이 보일까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나를 뚫어지게 보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여어, 오랜만이다!"
반갑게 인사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뭐야, 너 지금 나 기억 못 하고 있지?"
낯설다. 모르는 얼굴이다. 선배인지 동창인지 감도 안 잡혀 대답도 못 하고 있으려니까 완연히 섭섭한 얼굴로 이름을 일러준다. 아- 아아. 그런 이름이 있었지.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얼굴은 도무지 연상되질 않는다.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하고 나서는, 잘 지냈는지, 결혼은 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가뜩 껄끄러운 질문들을 받았다. 사람들은 사소한 친분으로 다른 이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최소 10년 이상 서로의 소식이 전혀 닿지 않았으면 남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 이혼했구나. 그래, 요즘은 이혼이 그렇게 흠도 아니지, 뭐. 일도 그만뒀으면 천천히 올라가라. 언제 술이라도 같이 한잔 하게. 여기는 이제 어르신들밖에 없어서 심심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반갑다."
길어야 나흘 정도 묵었다 올라갈 예정이었지만, 그러마 했다. 쓸데없이 대화를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내 심정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옆에서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대부분 흥미도 생기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서로에게 공통된 주제,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이제는 멀어져 날 듯 말 듯 희미해진 물비린내를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물비린내 나던 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모를 리가 없다. 그 애가 6년 동안 소외당했던 것이 바로 그 물비린내 때문 아닌가.
"그 애? 야, 너 도대체 그 물비린내가 뭐길래. 그 애 아무 냄새도 안 났어. 네가 하도 그러니까 다른 애들도 덩달아 피했던 거지. 물비린내가 뭔지도 몰랐다, 나는. 그때 네가 키도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드세서 다들 널 따르기는 했지만, 그 애 생각하면 지금도 여간 미안한 게 아니야. 중학교도 겨우겨우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들어간 지 한 달도 안 돼서 자퇴한 후로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몰라. 취업 나간 제 누나 따라갔다는 말도 있긴 했는데…… 한창 어릴 때 그렇게 따돌림을 당했으니 학교에 적응 못 했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 나도, 다른 애들도 할 말 없는 건 매한가지지만, 넌 아직도 그 물비린내 타령이냐."
이번에는 내 쪽에서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가해자라는 것 같다. 그리고 저는 전하지도 않은 사과와 비교적 온전한 기억을 내세워 나와는 차별을 두려는 것 같다. 나에게 책임을 지우고 저만 가벼워지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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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입장 같은 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으므로, 여기에서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