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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

외출

구겨지고 땀냄새나는 여름옷은, 색 짙은 가을 겉옷들 사이에서 부끄러이 펄럭였다. 얇은 천 위로 스치는 바람이 차가웠다. 부쩍 나빠진 시력은 어느 것 하나 선명하게 잡아내지 못해 시야는 잔뜩 흐렸고, 내 걸음새도 익숙지 못하고 어딘가 어색했다. 공기는 낯설고, 지나가는 시선 하나하나가 따가웠다. 다른 이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시간 따라잡지 못한 나 혼자 부자연스러웠다. 이 틈에서 더는 견디어 서 있을 수 없어 곳 갈 데 없는 발걸음을 멈추고, 어디론가 숨어들고만 싶던 그때에, 말끔한 구두가 앞에 섰다. 헤지고 색바랜 내 단화가 더 없이 초라했다.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햇볕에 닿는 눈꺼풀이 아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갑고 그리운 얼굴은 조금도 숙여주지 않을 것이었다. 나도 저도 뻣뻣이 굳은 목이었다. 그래도 진득하니 기다려줄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의 높이보다 치켜야 할 턱과, 내가 가졌어야 할 그것과, 그것을 위해 들였던 하찮은 수고와, 채우지 못하고 쏟아버린 시간과, 텅텅 빈 길고 무수했던 새하얀 밤이 스멀스멀 메어와, 스스로 민망하여 감히 내비치지도 못할 욕심이 비워지지가 않아서, 눈 한 번 올려보지 못하고 못난 꼴로 돌아섰다. 어깨며, 팔이며, 다리며 신경 써 걸어도, 내 뒷모습이 너무나도 볼품없을 것이 극명하여, 나지도 않는 울음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