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영화를 힐링무비라 했나. 여기저기 아무 데나 힐링, 힐링. 이 단어의 훌륭한 범용성에 감탄. 웰메이드나 힐링이나 남용되다 보니 이젠 그냥 평범한 수식어 같다. 그래서 이것도 뻔한 멜로쯤 되는 줄 알았지. 종종 올라오는 후기 제목들만 보고 뭇 사람들 울리는 어둡고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러다 요즘 우울한 영화가 보고 싶어서 좀 각오하고 봤는데, 뭐야 이거 (로맨틱)코미디잖아. 포스터부터가 전형적인 미국 로코물인데!
완쾌되지 않은 조울증 환자의 퇴원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감상 목적에 충분히 부합했다, 고 생각했는데 훼이크였어. 팽팽한 심리적 긴장감으로 극이 전개될 줄 알았는데, 5분도 안 되어 흔들렸다. 거짓 퇴원한 대니가 착하게 돌아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게 심각한 영화가 아니라는걸. 팻이 극도로 흥분해 아버지와 엎치락뒤치락할 때, 아버지의 'i'm not hitting him, he's hitting me!' 이 대사에 웃고도 내가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줄 알고 반성하고 그랬음... 순경이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말할 때에도 팻을 자극하는 건 아닌가 괜히 덜컥했네. 초중반까지는 팻 상태가 불안해서 뭔 일 날까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내심 그것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그걸 말끔히 날려줬다. 무겁고 음울한 소재를 희석해 마냥 가볍지도 않게 잘 풀어낸 것 같다. 엔딩도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갔지만, 괜찮은 영화다. 재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