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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nowpiercer 설국열차, 2013


※ 내용 누설 있음


사실 예고편 보고 불안하긴 했었다. 이 이상 뭐가 더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안 생겨서. 그래도 감독만 믿고 본 건데, 긴장감 넘쳐야 할 영화가 지루해서 실망. 전반적인 분위기가 느슨하다. 심지어 액션씬마저도. 앞 칸으로 나아가던 중에 벌어지는 난투극, 양쪽이 맞붙기 전 대치상황에서는 뜬금없이 생선이 튀어나오는데, 도무지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검색해 봤더니 이런 인터뷰가.


- 생선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 ‘피의 축제’가 시작된다는 예고의 의미다. ‘대부’에서 물고기를 소포로 보내는데, 그것은 ‘죽음의 전갈’이다. 그게 인상적이어서 생선을 집어 넣었다.

(http://www.fnn.co.kr/content.asp?aid=7eab90da9d4c4e38b3eea1dced51b946)


그 귀하디귀한 생선을! 회나 쳐 먹지! 그래, 대부에서는 충분히 상징적 의미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니잖아. 눈앞에서 생선 배 째는 게 퍽이나 위협이 되겠다.

관람 당시 내내 머릿속에선 생선이 떠나질 않았는데, 그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 정체불명의 씬이 나옴. 이것도 찾아보니까 감독 인터뷰가 있었다.


Q : 메이슨이 틀니를 빼는 장면은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웃겼다.

봉 : 정말 그랬나? 관객 들이 재밌어 해줬으면 하는데. 이것도 틸다 스윈튼이 먼저 제의한 장면이다. 분장용인 틀니를 빼고 진짜 이는 CG로 모두 지웠다.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싶어서 넣었는데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집어 넣게 됐다. 메이슨이 고령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약간 성적인 의미도 있지 않겠냐는 말도 나와서 재미있었다.

(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07/h20130730073132133450.htm)


재미없었다. 틀니 뺄 때 다들 으... 이런 반응이었지, 웃는 사람 없었음. 난 그저 혼란스럽기만. 나중에 여러 가지 의미를 집어넣었다는데, 귀에 건다고 다 귀걸이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의미 같은 건 없고 그냥 넣고 싶어서 넣었다는 거네.

이후로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런 특수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사람 심리를 거칠고 조금은 무례하게 다뤄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물들은 그냥 상황 따라가기 급급하다. 크리스 에반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 인물과 공감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던 경험들을 떠올렸다. 어려웠지만, 치료를 받는 것 같았다”

(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218507)


'그런 인물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던 경험들을 떠올려야 했다.' 인물 자체에는 공감하기 어려우니까 사적인 경험을 막 끄집어냈는데 잘 안 됐다는 거 아닌가. 마지막에 흐느끼는 장면이 있는데, 본인도 그 상황에 몰입이 잘 안 된 것처럼 보였음. 그러니까 보는 입장에서도 안 와 닿을 수밖에.

그래도 결말이 좋으면 앞에서의 너저분함이 만회되는데, 망함. 어떻게 포장할 수가 없다. 요나의 뛰어난 청각은 끌려간 애들을 찾기 위함이었나. 진짜 초능력이 아니고서야 그런 감각/능력은 '일반인보다 특출난 정도'로만 쓰는 게 좋다. 이야기 막혔을 때 그걸로 어떻게 해결해볼 생각하지 말고. 애들을 찾긴 찾아야겠는데 찾을 방법이 없으니까 청각 발달이라는 설정이 투시력이 돼버린 거 아니야. 그렇게 사기캐가 나오고 밸런스가 무너지는 거지. 그 애들도 그렇다, 엔진룸에서 일할 게 아니라 윌포드가 굽던 그 고기가 되는 쪽이-앞에서 인육 얘기도 나와서 그런 줄로만 알았음-, 뻔하지만 커티스의 분노에 설득력을 실어줬을 거라고 본다. 아무튼 그 애를 구하기 위해, 지도자의 자격과도 같은 외팔이가 되었는데 뭐 감정 잡을 틈도 주지 않고 으앙쥬금. 차라리 커티스가 격분해서 이성 잃고, 다 좆까! 나 안 해 시발! 이러고 폭파시켰으면 모르겠는데, 약쟁이인 줄 알았던 무정부주의자를 표방하는 그냥 이상한 놈의 비이성적인 독단으로 영문모르고 그냥 개죽음. 문 연다며 왜 열차를 전복시켜. 폭탄 설치할 때도 긴박함이 필요하긴 한데 끌어올 데가 없으니까 앞쪽칸 사람들이 갑자기 좀비처럼 몰려온다. 영화 때깔만 좋았지 이건 뭐... 생존자는 열차 안에서 태어나 바깥세계에 대한 어떤 갈망도,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 이게 과연 희망인가. 저 산등성이에, 먹이사슬 위에 있는 북극곰과 눈이 마주쳤는데? 다른 생명체의 발견, 바깥세상에서 삶의 가능성-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햇살 한줄기, 풀 한 포기 보여주는 편이 나았다. 애초에 이 영화에 희망적인 결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세계관이고 나발이고 연출 참. 한 번 더 보면 더 깔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볼 자신은 없으니까 이 정도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