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는 과일다운 상큼한 맛이 없네, 어쩌네 하면서 내 먹는 것도 마땅찮게 쳐다보던 놈이 무슨 일인지 생채기 하나 없는 푸른빛 잔뜩 들어간 싱싱해 뵈는 바나나를 사 와서는 네 그거 좋아하지 않느냐고 내민다. 있으면 먹기야 하지마는 네 아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까진 아니라고 했더니, 기껏 생각고 사왔더니 무슨 말이냐, 네가 바나나를 안 좋아할 리 없다, 어서 먹으라고 성화다. 골라도 맛없는 걸 잘도 골라와 생색이다. 제 먹으려고 산 것이 아님은 분명하나, 정말 나 먹으라고 산 건지는 확실치가 않다. 만약 그렇대도 공연한 일을 했다. 여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느냐고 묻는다면 섭섭한 말만 돌아올 것이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실갱이를 벌이다가, 이놈의 생떼에 지쳐 말을 돌려 바나나는 무른 것이 단 법이라 했더니 그럼 썩혀 먹어라, 툭 던져놓고 간다. 글쎄 썩은 게 아니래도. 이미 돌아선 그 뒤에 토를 달아본들 들은 체할 리 없다. 설익은 바나나가 떫기만 하다.
ET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