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슨 조선시대 천민이냐 되물었지만, 정말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재차 물어도 고 믿을 수 없는 '정말'만 곱절로 늘어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 묻는다 해도 그 뻔뻔한 낯짝은 꼼짝도 안 할 성 싶었다. '정말'로 성씨가 없을 리는 없으나, 별 수 없이 이름으로만 불러야 할 판이었다. 괜히 억울해졌다. 내 성과 이름은 온전하게 홀랑 넘어가고, 나는 반쪽짜리 이름을 들었다. 흠-, 하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내려갔더니, 저쪽은 의기양양한 웃음 빛을 숨기지 않았다. 오냐, 그렇다면 네 성씨가 들통나는 게 먼저일지, 내가 반쪽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것이 먼저일지 어디 한 번 해보자- 속으로 다짐한 것이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간 나는, 없는 자리에서도 그 이름을 말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성씨를 듣는 일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척, 아무런 특징도 없이 평범해 빠진 외모를 애써 묘사해 일러줘도, 아아- 그 애 말이구나, 하면서 듣는 이름에 성씨는 쏙 빠져 있었다. 간질간질 무언가 잔뜩 기대하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다가, 재채기가 도로 들어간 것처럼 내 맥도 같이 빠졌다. 그래, 그 애 성이 무어냐고 직접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른다는 것과 본인에게 듣지 못한 것을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 어쩐지 자존심 상하는 것이었다. 돌려 돌아 눈치채지 못하게 내 마음만 흐뭇이 알아낼 참이었다. 야, 어이, 거기, 혹은 너. 익숙해진 이 부름이 그때 가서 변할까 모르겠지마는, 쓸데없이도 내 이름이 꼬박꼬박 맞불려 지는 것은 역시 마뜩하지가 않았다. 내가 아직 제 성씨를 모르는 것을 알고 약 올리는 것이다. 내 언젠가 꼭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장난에 놀아준 척 태연하게 흘려줄 터이다.
ET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