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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

운동화

신발 끄는 소리가 듣기 싫게 났다. 한 번도 좋게 들린 적이 없었다.
"신 질질 끌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꼬불쳐 신지 말라고도 했제! 뭔 놈의 신을 그리 험하게 신냐. 내후년 구정까정은 다 닳아도 안 사준다 내 분명히 말했다잉."
"인자 발이 커서 다 안 들어간단 말여라."
"일부러 큰놈으로 사왔는디 무슨 소리여. 고새 발이 많이 컸단가. 이리 와봐라, 좀 봐야겄다."
"아 왜 내 말을 못 믿는다요! 참말로 작다니께!"
급히 신발을 벗어놓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신발 다시 놓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 좀 보소. 벌써부텀 저래 생겨먹어갖고 어따 쓴댜."
집에 다다를 때쯤 고쳐 신으면 될 것을 나는 매번 보란 듯이 뒤축을 꺾어 신고 왔다. 새 신 사줄 터니 장에 가자, 기다리는 말은 못 듣고 꾸지람 듣기 일쑤였다. 아직 반년도 안 되었으니 새로 사줄 턱이 없었다. 그래도 곧이듣기 싫어 이렇게 뻗대고는 했다.

"이거 비싼 거다이. 요즘 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거라든디 내가 뭘 알아야제. 큰맘 먹고 사왔응게, 애껴 신어라."
처음 사오신 운동화였다. 신발끈을 얼마나 많이 묶었다 풀었다 했는지 몰랐다. 이렇게 얼기어보고, 저렇게도 얼기어보고, 방안에서 신고는 방방방방. 참 따뜻하니 폭신도 했다. 신을 방안에서 신어야 쓰겄냐, 하면서도 흐뭇이 바라보시는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맡에 두었던 신발부터 찾고, 다리에 올려놓은 채로 밥상머리에 앉았다. 뜨는 둥 마는 둥, 온통 새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루에 나와보니 밤새 눈이 많이 쌓여, 신발이 젖을까 싶어 이걸 신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늦겄다, 발 시려운디 고만하고 새 놈 신고 가그라."
밥상을 들고 나가는 어머니 말씀에, 청하지도 않은 일을 허락받은 것처럼 냉큼 고무신을 치워두고 운동화를 신었다.
칼바람 몰아치는데도 뭐 좋다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지겹고도 긴 등굣길을 걸었다. 절반쯤 왔을 때, 누가 뒤에서 달려오더니 등을 턱 쳤다. 같은 반 동무였다.
"새 신 샀냐!"
나는 한껏 우쭐해져선 말없이 턱을 내밀고는 끄덕끄덕했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땅바닥, 내 신발을 뚫어져라 보는 동무 때문에 으쓱해, 안 그런 척 괜히 목을 빼들고 시선을 먼 데 이곳저곳 두며 걸었다.
"이야, 부럽구마. 나는 언제 고런 거 신어볼란가. 너도 알제, 고무신 이그는 발이 다 얼어갖고 디지겄다. 근디 그거 쟈랑 같은 신발 아니냐? 우리 옆집 사는 안디, 어찌나 자랑 질을 해대던가 배가 아파 혼났다이. 나랑 같이 가서 좀 곯려주자."
팔목을 잡아 이끄는 통에 못 이기는 척 먼저 가는 그 애를 앞질러 가 섰다. 네모진 책가방에 주눅이 좀 들었지만, 신발은 다를 것이 없었다.
"야, 야도 니 꺼랑 똑같은 데 꺼다. 그래 재쌌드만, 인자 본게 밸것도 아닌갑네."
잔뜩 기가 산 모양새에, 그 애는 얼굴이 벌개져서 주춤주춤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신발을 빤히 쳐다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그거 가짜다."
이번엔 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애가 요거 봐라, 하며 뒤돌아서서 한쪽 발을 위로 올려 보이는데, 신발 뒤축에 난 상표 그림이 내 것과 비슷했다. 얼른 내 것을 벗어 번갈아 봤더니 다르게 생겼다. 한겨울에 귀까지 열이 올라서는 신발을 손에 쥔 채 오던 길로 달음박질쳤다. 뒤에서 동무가 부르는 듯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다른 한 짝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마루 밑에서 신던 고무신을 꺼내 신었다. 뭐 두고 갔냐, 부엌문이 열렸다.
"학교는 어쩌고, 날도 춥구마 좋은 신 놔두고 왜 고무신이냐."
"차라리 고무신을 사주요!"
"이놈이 지 생각고 사왔더마 또 으째 그러냐. 퍼뜩 다시 신고 학교 가라."
어매는 암것도 모름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삼켰다.
"나 학교 안 갈라요."
신던 고무신도 팽개치고 마루에 드러누웠다.
"이놈의 자슥이! 야 아부지, 좀 나와보소!"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고는, 억지걸음으로 학교에 가, 늦었다고 또 선생님한테 맞았다. 찬 복도에 무릎 꿇고 앉아서도 열이 식질 않았다. 맞은 곳도 후끈후끈했다. 쉬는 시간 종 울리고 나온 동무는, 내 옆에 앉으려다 엉덩이가 닿자마자 읏, 차거! 일어나고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무 그라지 마라, 야. 가 것이 가짜일 것이여. 내가 보기엔 뻔만 난디, 진짜 가짜가 어딨다냐."
위로하는 동무 앞에서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