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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 취향

※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는 편이 못 되므로, 시각이 편협할 수 있음

히어로, 멜로, 호러, SF는 꺼리는 편이다.
히어로물은 그냥 재수 없어. 사기적인 능력은 그렇다 치고, 한 사람이 세계를 구한다는 그런 게 납득이 잘 안 된다. 그나마 제일 인간미 있는 스파이더맨도 별로.
멜로만큼 진부하고 식상해지기 쉬운 장르도 없는 거 같다. 그래도 아주 안 보는 것은 아닌데, '이프 온리 (2004)'처럼 빤한 것도 모자라 시종일관 안타까운 표정 지으면서 울락 말락 하는 영화는 딱 싫고, 상큼상큼 풋풋한 쪽이 좋다. 이쪽은 로맨스라고 하나요. 그래도 휴 그랜트가 나오면 보, 볼까. 왕가위 영화도 좋다. 습한 날씨에 피부는 번들번들, 붉은빛 돌고 끈적해 보이는 방, 저 벽에 터털터털 환풍기 돌아가는 틈에서 새어 들어오는 뿌연 빛줄기에는 먼지가 둥실둥실. 전혀 차분하게 들리지 않는 억양이지만 어쨌든 심각한 대화. 알듯 말듯한 감정선. 나쁜 남자 양조위와 못된 남자 장국영. 다소 찌질하고 기이한 언행. 그게 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그런데 나는 왜 몇 년간 '아비정전 (1990)'을 공포영화로 알고 있었나. 사실 제목이 좀 그렇잖아. 정전 속의 아비규환. 정전된 사이에 막 찔러 죽일 거 같음. 제목을 한 번만이라도 검색해 봤다면 그런 생각 안 했을 텐데. 내 비록 읽을 수 있는 한자는 '바를 정' 한 자 뿐이어도 그게 정전의 '정'자가 아니란 건 아니까!
호러는 으허ㅓ흐ㅓ허으허어허ㅓㅇ 시발시발 으허허어흫으허어흐어.
SF는 그냥 손이 안 간다. 딱 봐도 SF, 대충 봐도 SF,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이 SF, 하는 느낌만 아니면 괜찮을 것도 같다. '더 문 (2009)'같은 것도 좋았고.
딱히 장르는 따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편식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 잘 나가는 장르들인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만, 액션은 봅니다....? 반전을 위한 반전 영화는 싫지만, 액션을 위한 액션 영화는 좋아한다. 전쟁 영화면 더 좋고. 하지만 액션을 위한 액션 영화면서 뭔가 있어 보이려고 이런저런 요소 욕심내서 넣었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는 그런 영화는 질색. 그러니까 '써커 펀치 (2011)', 너 말이에요, 너. '300 (2006)'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재미를 봐서 그런가 과하게 써먹었다. 한 장면 한 장면 영상미는 확실히 좋지만, 감탄할만한 액션은 없고, 전개 방식은 지루하고 난잡하다.
장르 얘기에 힘줘놓고 할 말은 못 되지만 굳이 분류해봐야 피곤하다. 어, 아니, 그래도 히어로랑 호러는 뺄게요. 장르를 떠나서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지루하지 않은 영화가 좋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이야기를 꽉꽉 잘 채웠다는 느낌이 들고, 의문점 남지 않게 벌여놓은 일은 깔끔하게 수습하는 영화. 아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내 이름은 칸 (2010)', 동기부여가 너무 억지스럽다. 주인공이 고등학교 때 다녔던 미술학원 원장님과 똑 닮기도 했지만,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니까 몰입이 안 돼서, 감동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서, 대사 센스도 빼놓을 수 없는데, 재치있게 쏟아내는 것도 좋고, 좀 덜떨어지는 것도 괜찮다. 상황 자체는 심각한데, 가벼운 대사로 분위기 축축 처지지 않게 이끌어가면서도 여운은 남기는 거.
내가 개입할 수도 없는 이야기에, 주인공이 꼭 잘 되었으면 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가령 잘 생겼다던가♥ 귀엽다던가♥ 으히히 이것만큼 순수한 이유가 어딨으요. 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마는, 그래도 웃어주는 것이 찌-잉. 주인공 삶이 어땠든지 간에, 영화가 재밌으면 해피엔딩이길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주인공이 어떻게 되든 내가 끝까지 못 봐요. 그런데 그 재미를 '끝까지' 잃지 않는 게 중요. '토탈 이클립스 (1995)'는 정말 좋아하지만 후반부가 영. '바람 (2009)'도 중반까지는 재미있었는데, 중후반부터 망해서 어떻게 되는지 관심도 없어졌다. 제일 좋아하는 엔딩은, '용서받지 못한 자 (2005)'. [ 친구 자살한 직후, 여자친구랑 아무렇지도 않게 게 뜯어 먹다가 화장실 가서 우는 그 장면이 정말 좋다. ]

다른 사람과 B급영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아- 했다고 하기도 뭐하다. 저질 영화 대하듯 했다. 소위 블록버스터이거나 이름난 영화만 취급하는 사람이었다. (초)호화 캐스팅에 저명한 감독, 막대한 예산 퍼붓고도 턱 빠지게 실망스러운 영화는 엄청 많은데. 'B급'이라는 게 뉘앙스가 좀 그렇긴 하다. 초반엔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고. 그런 반응 보니까 왠지 미안해서 좋아하는 B급영화도 그 범주에 못 넣겠다.

'주유소 습격사건 (1999)', 누군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해서 별로였던 거 알면서도 꾹 참고 다시 봤는데... 그 애는 지금 봐도 이 영화를 최고로 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