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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DE

(6+6)÷6×6×6-6_20090729

숫자가 들어가지 않는 책이 없었다. 그리고 흥미를 끄는 책도 없었다. 벽 한 면 빼곡히 키도 맞지 않고 앞뒤로 들쑥날쑥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들의 케케묵은 냄새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좋지도 않았다. 뇌 200% 활용법. 모기와 함께 한 92일.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101가지 이야기. 1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비행 18가지. 무박 3일 추천 여행지 12선.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그저 손 닿는 대로 빼어 든 이 책은 뻔한 이야기를 뭐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나 싶었다. 대충 훑어보고 책장에 집어넣으려는데, 책을 낚아챈 손이 한 권 더 옆에 꽂았다.
"규칙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책장을 찬찬히 살펴보아도 규칙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책들은 숫자 순서대로 꽂힌 거예요. 그러니까 7의 자리는 2권의 5 다음인 여기죠."
...아. 그것을 또 굳이 확인해보고 싶진 않았지만, 어쩐지 강요하는 눈빛이라 -성의있어 보이려- 책장 끝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며 다시 살폈다. 잘났다는 숫자 6을 제외한 온갖 출판되지 않을 것 같은 숫자들이 다 있었다.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 책들은 다 읽으신 겁니까?"
"한쪽씩이요. 제목 숫자의 쪽수를 읽는 거죠. 저기 '1000년의 비밀'은 총 376쪽이니까 두 번 돌아 67쪽. 그림책이나, 해외 원서는 읽었다고 하기 어렵지만요."
쪽수까지 외는 건가. 숫자와 규칙을 좋아하는 여자. 질렸다. 재미없다.
"그런데, 왜 6은 없는 거죠?"
"완전수인 6의 자리에 아무 책이나 끼워넣을 수는 없죠. 저는 66쪽의 6을 찾고 있어요."
"쪽수에까지 6이 들어가야 하는 거군요?"
"66은 단순히 6이 반복된 수가 아니라, 6에 6을 더하고 6으로 나눠서 6을 두 번 곱한 후에 6을 뺀 수에요. 6이 여섯 번 들어가죠. 정말 멋진 숫자 아닌가요?"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온통 6인 책을 찾는다는 것 같았다. 이런 대화는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 먼저 꺼낸 말이기도 했고, 한껏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게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