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꽃은 때 이르게 피었다 때 늦은 눈바람에 금세 졌다. 언제 어디에서 돋았는지 모를 민들레의 먼지 덩이처럼 날리던 홀씨도 모두 사라지고, 비 온 다음 날이면 길바닥을 노랗게 얼룩이던 송홧가루도 이제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일렁일렁 피어오르려는 봄기운을 누르고 눌렀다. 연한 하늘빛도 먼지로 빼곡히 희뿌옇게 가려두고서, 그렇게 봄이 지났다. 모르는 새 초록 이파리가 짙어진, 어느덧 여름이다. 지리했던 봄비는 장맛비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래에 매일 내리는 소낙비는 한낮의 열기를 식혀줄 것처럼 쏟아붓고는 새벽녘까지 끈덕지게 버틸 습기를 놓아두고 간다. 오늘도, 발바닥이 다 축축해지는 궂은 날씨다. 낯과 목덜미에 흐르지 않는 땀을 펴 바를 듯이, 방 안이 잔뜩 눅눅하다. 나는 뜨거운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어느 .. 더보기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