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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향수 향수 뭐 써요? 물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가끔 우연히 이곳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이름 모를 사람의 쓸데없는 관심일 것이었다. 해사하니 옅은, 처음 맡는 향은, 수수한 듯 주의 흩트리는 데가 있어서 그 잠깐의 시간으로 혼자 괜히 어색해졌다. 이쪽에서는 낯이 익게 된 지 꽤 되었다. 무심결에 닿은 척, 가벼운 곁눈질.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느긋하게 옮기는 시선. 뒤따라 걷게 되는 일이 있을 때에 서야 비로소 고개를 바로 들고 시선 자유로이 바라보곤 하였다. 소리 내지 않는 가벼운 발걸음, 선이 잘 맞아떨어지는 단정한 옷차림, 깔끔한 길이의 머리.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면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등이었다. 그 흔한 뒷모습에 사실,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 더보기
운동화 신발 끄는 소리가 듣기 싫게 났다. 한 번도 좋게 들린 적이 없었다. "신 질질 끌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꼬불쳐 신지 말라고도 했제! 뭔 놈의 신을 그리 험하게 신냐. 내후년 구정까정은 다 닳아도 안 사준다 내 분명히 말했다잉." "인자 발이 커서 다 안 들어간단 말여라." "일부러 큰놈으로 사왔는디 무슨 소리여. 고새 발이 많이 컸단가. 이리 와봐라, 좀 봐야겄다." "아 왜 내 말을 못 믿는다요! 참말로 작다니께!" 급히 신발을 벗어놓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신발 다시 놓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 좀 보소. 벌써부텀 저래 생겨먹어갖고 어따 쓴댜." 집에 다다를 때쯤 고쳐 신으면 될 것을 나는 매번 보란 듯이 뒤축을 꺾어 신고 왔다. 새 신 사줄 터니 장에 가자, 기다리는 말은 못 듣고.. 더보기
20100712 ~ 20100713 체크시트 뒷면, 갱지라 부담없이 낙서하기 좋음. 어제 오늘, 오전에 일이 좀 없어서 이러고 놀았다. 더보기
바나나 바나나는 과일다운 상큼한 맛이 없네, 어쩌네 하면서 내 먹는 것도 마땅찮게 쳐다보던 놈이 무슨 일인지 생채기 하나 없는 푸른빛 잔뜩 들어간 싱싱해 뵈는 바나나를 사 와서는 네 그거 좋아하지 않느냐고 내민다. 있으면 먹기야 하지마는 네 아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까진 아니라고 했더니, 기껏 생각고 사왔더니 무슨 말이냐, 네가 바나나를 안 좋아할 리 없다, 어서 먹으라고 성화다. 골라도 맛없는 걸 잘도 골라와 생색이다. 제 먹으려고 산 것이 아님은 분명하나, 정말 나 먹으라고 산 건지는 확실치가 않다. 만약 그렇대도 공연한 일을 했다. 여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느냐고 묻는다면 섭섭한 말만 돌아올 것이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실갱이를 벌이다가, 이놈의 생떼에 지쳐 말을 돌려 바나나는 무른 것이 단 법.. 더보기
이름 네 무슨 조선시대 천민이냐 되물었지만, 정말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재차 물어도 고 믿을 수 없는 '정말'만 곱절로 늘어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 묻는다 해도 그 뻔뻔한 낯짝은 꼼짝도 안 할 성 싶었다. '정말'로 성씨가 없을 리는 없으나, 별 수 없이 이름으로만 불러야 할 판이었다. 괜히 억울해졌다. 내 성과 이름은 온전하게 홀랑 넘어가고, 나는 반쪽짜리 이름을 들었다. 흠-, 하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내려갔더니, 저쪽은 의기양양한 웃음 빛을 숨기지 않았다. 오냐, 그렇다면 네 성씨가 들통나는 게 먼저일지, 내가 반쪽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 것이 먼저일지 어디 한 번 해보자- 속으로 다짐한 것이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간 나는, 없는 자리에서도 그 이름을 말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성씨를 듣.. 더보기